완판본(完板本) 심청전 복각 목판을 이용한 한지상의 인출특성에 관한 실험적 연구
An Experimental Study on the Printing Characteristics of Traditional Korean Paper (Hanji) Using a Replicated Woodblock of Wanpanbon Edition Shimcheong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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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고문헌 조사에서 목판 인쇄된 것인지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인지를 판별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금속활자의 발명과 활용시기가 어떻게 판정되느냐에 따라 인쇄의 역사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의 판정에는 다양한 정보가 활용되고 있으나 간기(刊記)를 비롯한 인쇄 배경에 관한 정보가 없는 경우에는 인쇄된 문서의 글자, 광곽, 먹의 종류, 먹의 제작시대, 한지의 제작시기 정보를 분석하여 고문서의 제작시기와 인출(印出)방법에 관한 판정을 하게 된다. 이러한 정보가 체계적으로 자료화되어 있지 않아 연구자의 경험과 감각에 의한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본 연구에서는 완판본(完板本) 심청전 복각 목판을 이용하여 목판본의 인출 특성을 실험적으로 조사하였다. 목판본 인출 시에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과 특징을 자료화하여 고문헌의 인출방법을 판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간기가 없는 목판 고소설의 경우 목판의 마모정도에 따라서 인출시기의 전후관계 추정에도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Trans Abstract
When investigating old, printed documents, determining whether a work is printed on a woodblock or using a movable metal type is crucial. It is because the history of printing in Korea and across the world relies on determining the relevant printing invention used and the time of use of the movable metal type. Deciphering details from woodblock and metal prints requires various kinds of information regarding the imprint and the work’s printing background, such as information on the characters in the printed document, the outline of the pages, the type of ink used, the production period of the ink, and the production period of the Korean paper. Analyzing such information can generally reveal the production period and the methods used on the old document. However, as such information is not documented systematically, relying on the researcher’s judgment based on their experience and perception becomes inevitable. This study conducted an experimental investigation of the printing characteristics of woodblock prints using a replicated woodblock of the Wanpanbon edition of the Shimcheongjeon. Subsequently, the various phenomena and characteristics appearing on the woodblock prints were documented for future reference to determine the printing method of old documents. Finally, woodblock novels without an imprint may be used as a reference to estimate the printing dates by determining the degree of wear on the woodblock.
1. 서 론
고대부터 근대에 한지(韓紙)로 제작된 많은 양의 서화와 문헌들이 낱장, 족자 또는 책자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쓴 수기 형태의 묵서도 많지만 고문헌의 상당수는 목판 또는 금속활자로 인쇄되어 있다. 고문헌 조사에 있어서 제작 연대, 제작 배경, 제작 방법, 제작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찾아내는 일은 고문헌을 통한 역사적 사실의 연구 이외에도 고문헌의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됨과 동시에 문화재의 보존, 수리 등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정보로 활용될 수 있다.
문화재의 경우, 현재 생산되는 공산품과 달리 그 존재 자체의 희소성과 가치성 때문에 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불가능에 가깝다. 관찰, 비접촉⋅비파괴적 조사 분석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문화재의 제작 연대, 제작 방법, 제작자에 관한 정보는 기존의 비슷한 유형의 문화재에 관한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유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제약이 따르게 된다. 문화재를 감정하는 전문가들도 그동안의 경험과 느낌으로 감정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고 감정 결과에도 많은 이견들이 제시되어 문화재의 가치 판단이 보류 또는 번복되기도 하고 각종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또는 직지(直指))는 고려시대인 1372년에 초록한 것을 백운화상이 입적하고 3년 뒤인1377년에 세계 최초로 청주 흥덕사(興德寺)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이 초인본(初印本)으로 금속활자본은 현재 하권만이 전해지고 있으며,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간본(古刊本)으로는 1378년 백운화상이 입적한 여주 취암사(鷲巖寺)에서 간행한 목판본(보물 제1132호)이 있다(Park, 1988; Bulgyo News, 2015; Park, 2020; Kyunghyang Shinmun, 2020). 서양에서는 1455년 8월 24일, 금속활자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8∼1468)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42줄 성경(구텐베르크 성경)』이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며 직지에 비해서 인쇄시기가 78년이나 늦다(Kyunghang Shinmun, 2020).
보물 제758-1호와 보물 제758-2호로 지정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경우 두 권 모두 목판본(木版本)이라는 의견과 한 권은 금속 활자본(金屬活字本)일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Park, 1988; Park, 2020). 금속활자본이라는 의견이 사실이라면 직지보다 138년 앞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이 되므로 금속활자 인쇄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증도가의 인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시대의 금속활자도 발견되어 국가기관까지 진위감정에 나섰으나 명쾌한 판정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KBS, 2016; 2017; DNEWS, 2020; Dabosung Gallary, 2021). 이러한 문제는 목판인쇄와 금속활자 인쇄의 특징에 관한 기초자료가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지 않은 것도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말기와 근대 개화기에 상업적으로 유통되던 한글 고소설(古小說) 중에서 완판본 심청전의 복각 목판을 사용하여 한지에 반복적으로 인출하는 실험을 실시하였다. 목판인쇄로 인출된 결과물의 특징을 비교하여 한지상의 목판인쇄물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특성을 파악하여 고문서의 인쇄방법을 판정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참고자료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제까지의 고문헌의 인쇄방법의 감정에서 근거자료로 제시되었던 내용들과의 비교를 통하여 어떠한 잠재적인 문제점들이 있을 수 있는지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2. 연구대상 및 연구방법
조선시대 후기와 근대 개화기에 상업적으로 유통되던 한글 소설의 경우에는 필사본과 더불어 목판본으로 간행된 것이 다수 전해지고 있다. 목판의 극히 일부가 장식품용 소재로 재활용되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인출된 자료가 서적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서적의 형태로 전해지는 것도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 유실된 것, 파손된 것, 변색된 것, 낙서가 있는 것 등 다양한 형태의 유통 및 사용 흔적이 남아 있어 목판의 상태를 정확하게 추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본 연구에서는 목판인쇄의 특징을 한지상의 인출 실험을 통해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목판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100년 이상된 목판을 사용하여 인출하는 것은 목판의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고 보존환경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므로 실험에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근래에 복각된 완판본 목판을 사용하여 인출특성을 조사하게 되었다.
2.1. 완판본 심청전
완판본은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전주를 중심으로 하는 전라도 지역에서 출판된 책으로 간행시기가 적혀 있는 것도 다수 존재한다. 본 연구에서는 완판본 심청전 71장본(상권 30장, 하권 41장)을 복각한 목판 중에서 한 장(한 면)을 사용하였다.
심쳥젼 권지상이라
송나라 말년의 황주 도화동의 사람이 잇스되 성은 심이요
명은 학규라…
로 시작되는 국립중앙도서관(National Library of Korea, 2021)이 제공하는 완판본 심청전 상권과 하권의 간기(刊記)가 있는 부분의 이미지를 Figure 1에 예시하였다. 목판본 하권의 간기에는 대한 광무 십 년 병오 맹춘 완서계신간(大韓光武十年丙午孟春完西溪新刊)으로 기록되어 있어 1906년에 판각(板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글 고소설의 경우 목판에 간기를 새겨 넣은 경우도 있다. 완판본 심청전의 경우 마지막 장에 Figure 2의 간기를 인쇄한 종이가 붙어 있다. 간기에는 메이지 44년(1911년) 8월 22일 (明治四十四年八月二十二日)에 전주에 있는 서계서포(西溪書舖)에서 발행한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간기를 추가하게 된 것은 1910년 8월 22일에 조인하여 8월 29일에 발효한 한일병합조약(韓日倂合條約 또는 韓国併合に関する条約) 이전에 조선통감부(朝鮮統監府)가 1909년2월에 법률 제6호로 시행한 출판법(Song and Jung, 2015; National Archives of Korea, 2021)에 의하여 인가를 받아 출판에 관한 정보를 명시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유통 전에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목판의 판각은 1906년에 완성되었으나 소설은 5년 후인 1911년에 출판되어 유통된 것이 전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2. 완판본 심청전 목판의 복각
2017년 9월 26일자 한겨레신문(Hankyoreh, 2017)의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완판본문화관의 결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목판인쇄, 목판의 판각기술, 재질, 복각의 의미,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의 인출특성의 차이와 그 차이를 이용한 판단 결과가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에 관하여 잘 정리되어 있다.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완판본문화관이 ‘완판본심청전’의 목판을 100여 년 만에 복각했다.
완판본문화관은 571돌 한글날을 앞두고 목판 복각 출판기념 특별전시 ‘100년 만에 핀 꽃, 완판본 심청전’을 28일부터 12월31일까지 진행한다. 28일 오후 2시 출판기념식이 열린다.
완판본은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있었던 전주(완산)에서 발간한 옛 책과 그 판본을 말한다. 조선시대 목판인쇄는 서울의 경판, 경기도 안성의 안성판, 대구 달성판, 전주 완판본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완판본은 그 판본의 종류⋅규모에서 최고로 알려져 있다. 이유는 전라도⋅제주도를 관할하던 전라감영에서 출판물을 많이 만들었고, 책 제작을 위한 한지가 전주의 특산품으로 대량생산되는 등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출판문화의 대표적 역할을 담당한 완판본, 특히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의 목판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목판을 제작하는 기술인 판각 기능의 전수도 이어지지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안준영 관장과 그가 운영하는 대장경문화학교의 문하생 9명이 의미 있는 작업에 참여했다.
2007년 시작한 작업에는 10년간의 노력이 들어갔다. 이들은 50∼60년생 산벚나무를 가로 52 cm, 세로 27 cm, 두께 5 cm가량 자른 뒤 그 위에 칼로 한 글자씩 새겼다. 이렇게 36판을 제작해 심청전 상⋅하권 합쳐 71장의 책을 만들었다. 모본은 1906년 전주 서계서포(책방)에서 간행한 완서 계신판(完西溪新板)이다. 목판 복원사업이 국가나 기관 주도로 진행되는 현실에서, 이처럼 민간이 자생적으로 복원⋅복각을 시작해 책을 간행까지 마친 사례는 드물다.
안관장은 “무형유산의 전승을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기능의 계승이 필요하다. 전통 판각 강좌를 시작으로 기능을 계승하며 심청전 상⋅하권 전체를 목판으로 복각하게 돼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고전소설 완판본은 전주의 문화적 자산이다. 해마다 한글날 주간을 기점으로 전시⋅체험⋅문화행사를 통해 홍보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의 인출특성의 차이를 활용하여 전래된 고문헌이 어떤 방식으로 인출되었는지를 판별하기도 한다.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의 특성은 주로 인쇄된 글자, 광곽(匡郭), 먹의 종류, 사용된 한지의 제작시기 등의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다만 실험결과를 통하여 정리된 자료가 없기 때문에 경험에 의하여 싸여진 감각적인 판단과 더불어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증거 또는 분석정보를 활용하여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확실한 근거를 가진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판단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Figure 3에 완판본 심청전의 복각과 작업의 사진과 심청전 하권의 마지막 면을 인출한 이미지를 예시하였다. Figure 1(b)와 Figure 3(b)를 비교하면 글자체가 어느 정도로 정확하게 재현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복각본에서는 원본의 대한 광무 십 년 병오(大韓光武十年丙午)가 생략되어 있고 복각 년도인 정유년(丁酉年, 2017년)이라는 글자와 함께 복각에 참여한 분들과 복각장소에 관한 정보가 추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장(목판 한 면)은 책의 두 쪽을 담고 있으며 약 520자 정도가 새겨져 있다. 목판의 한 면은 판심제(版心題)의 좌우로 한 쪽당 세로로 13줄씩 새겨져 있다.
2.3. 완판본 심청전 복각 목판본을 사용한 인출
본 연구에서 목판본을 사용한 인출특성에 관한 실험에 사용한 완판본 심청전 제12면의 이미지(National Library of Korea, 2021)와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복각한 목판으로 완판본문화관에서 샘플 인출용으로 사용되는 목판의 사진을 Figure 4에 표시하였다.
한지에 인출할 때의 작업을 순서대로 사진으로 정리하면 Figure 5와 같다. 우선 목판의 표면에 먹물이 잘 묻도록 표면이 물기를 머금도록 한 후 솔로 목판 표면의 오염과 이물질을 제거하고 먹을 묻힌 솔로 목판 표면에 고르게 먹물을 묻혔다. 한지를 목판 위에 한 쪽 방향부터 살며시 놓고 밀대로 한지의 위면에서 좌우로 밀어가면서 한지의 뒷면에 나타나는 먹물의 농담을 보아가며 적당한 농담이 될 때까지 밀대를 반복적으로 좌우로 몸에 가까운 쪽부터 먼 쪽까지 밀어 한지에 목판에 판각된 문자가 잘 인출되도록 하였다. 인출이 끝나면 한지를 한 쪽부터 목판에서 분리하여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먹물이 마르게 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필요한 장수만큼 반복하였다.
인출작업의 결과는 여러 가지 요소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였다. 목판의 상태, 먹의 종류, 먹물의 농도, 한지의 재질, 한지의 두께, 습도, 인출자의 숙련도, 인출 시의 힘의 배분, 밀대의 움직임, 농담 조정의 개인적 성향 등의 다양한 요소가 인출된 결과물의 품질에 영향을 주게 된다. 현대에도 이러한 조건들을 정량화하여 정밀하게 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인출자의 숙련도에 의지하여 인출된 고문서의 경우 제한된 수의 결과물을 바탕으로 인쇄물의 특징을 일반화하는 것은 부정확하며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본 연구에서는 인출 작업을 2명의 작업자에게 의뢰하여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방법으로 각 5장씩 인출하게 하여 그 결과물을 앞면과 뒷면에서 사진 촬영하여 글자의 선명도, 글자 모양의 정확도, 광곽을 포함한 글자 이미지의 재현성, 동일한 작업자의 인출특성의 재현성, 작업자간의 인출특성의 차이점, 인출된 이미지의 크기의 변동 등에 관한 정보를 수치화하여 판단자료로의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두 명의 작업자가 10장을 인출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0분 정도이다.
3. 인출실험 결과와 고찰
Figure 6과 Figure 7에 작업자 두 사람(Operator A와 B)이 인출한 각 5장의 목판 인쇄물 앞면과 뒷면의 사진 이미지를 정리하였다. Operator A는 각 장마다 먹의 농도가 다르게 인출되는 특징과 밀대로 한지를 밀 때 힘이 많이 들어가는 부위가 광곽 부근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Operator B의 경우 각 장마다 먹의 농도의 변화는 작은 편이나 각 장내의 먹의 농도의 변화의 폭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미지의 크기가 작아 인출특성의 차이를 구별하기 쉽지 않아 목판의 좌우 세 줄의 이미지만 따로 모아 비교하기 쉽게 정리하여 Figure 8과 Figure 9에 표시하였다. 인출자에 따라서 최종 인쇄 결과의 글자의 선명도, 농담, 농담의 균일도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Figure 10에 글자별로 인출특성의 변동이 크게 나타난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씩 모아서 표시하고 한지를 붙이는 과정에서 목판에 살짝 붙었다가 떨어지면서 먹이 묻은 상태에서 한지가 다시 목판에 밀착되어 생긴 것으로 보이는 일부 글자의 겹침 현상이 발생한 예를 들었다. 글자에 따라서는 거의 같은 시간에 인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먹의 뭉침 현상으로 글자의 윤곽이 불분명해지거나 자음과 모음 또는 글자와 글자가 붙어서 인출된 것과 먹의 찌꺼기가 글자의 모양과 관계없이 나타나는 것이 관찰되었다.
인출된 10장의 이미지를 겹쳐서 서로 완벽하게 일치하는지에 관하여 조사해 본 결과 육안으로도 인출된 이미지 간에 약간의 부정합이 발생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출된 이미지 간의 부정합을 가시화하고 부정합의 정도를 정량화하기 위하여 이미지 분석 소프트웨어(미국 WaferMasters, Inc.의 PicMan (Kim et al., 2019; Yoo, 2020; Yoo and Yoo, 2021; Yoo et al., 2021)을 사용하여 대표적인 이미지 2장을 오른쪽 위의 광곽의 교점에 맞추어 이미지를 겹쳐서 표시한 결과를 Figure 11에 표시하였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왼쪽 아래의 광곽에서 약 3.0 mm 정도의 밀림현상이 발생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미지 내에서 글자도 오른쪽 위의 기준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글자의 밀림현상이 크게 나타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왼쪽 아래 부분의 글자의 경우 세로방향의 모음의 위치가 약 2.4 mm 밀려나서 인쇄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미지 상에서 광곽의 폭이 337.5 mm이고 광곽의 밀림이 3.0 mm, 모음의 위치가 2.4 mm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을 백분율로 환산하면 각각 0.88%와 0.71%의 밀림에 상당한다. 이것은 목판에서 문자를 한지에 인출할 때 밀대로 한지를 문지르면서 문지르는 힘과 한지가 수분을 흡수하여 팽창하고 건조하면서 수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업자에 의한 힘의 안배와 인출 시의 작업 조건의 조정과 작업 패턴에 따라서 개인차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지의 종류, 재질, 두께, 습도, 목판에 칠해진 먹물의 질과 양에 따라서도 충분히 변동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목판의 마모를 고려하지 않아도 될 짧은 시간(10분간 10장의 인출)의 실험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변화가 관찰되었다. 이러한 자연스런 인출 시의 편차를 고려할 때 경험이나 느낌만으로 고문서의 인출방식을 논의하는 것은 상당한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Figure 10과 Figure 11의 예를 보면 글자를 한 자씩 비교하면서 글자 간의 겹침의 정도를 기준으로 일치도를 계산한다고 하더라도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광곽의 크기나 모양의 일치도를 눈대중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도 상당한 판단 오류를 일으킬 개연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완판본 심청전의 복각을 시작한 것이 2007년이고 하권의 마지막 면의 복각을 완성한 것이 10년 후인 2017년이다. 같은 목판본이라고 하더라도 판각 시기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목판의 변형과 인출 매수에 따라서 목판의 마모도 발생할 수 있다. 같은 목판을 사용하더라도 인출시기에 따라 인출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목판에서는 나무의 갈라짐 때문에 목리문(木理紋)이 발생하기도 하고 목판의 일부가 탈락하여 인출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같은 목판인쇄본이라고 하더라도 인출시기의 선후관계 및 목판상태의 시간변화의 추정도 가능할 것이다. 금속활자의 경우에도 활자의 흔들림, 마모, 활자의 크기, 같은 활자의 사용 빈도 등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인출에 사용한 먹물이 목재와 금속표면에서 묻는 양과 상태가 달라 인출결과에도 많은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물 제758-1호(삼성본, 三省本)와 보물 제758-2호(공인본, 空印本) 남명천화상송증도가 (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목판본 여부의 논쟁은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으나 연구자마다 의견이 다르다(Park, 1988; Park, 2020). 두 가지 인쇄본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특징과 목판인쇄와 금속활자 인쇄본의 특징을 대조 비교하여 각자의 경험에 의거하여 의견을 형성하게 된다.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의 특징에 관해서는 서지학연구자들에 의해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잘 정리되어 있으나 정성적인 판단기준이 제시되어 있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Shon, 1971; Cheon, 1993a; 1993b; Ok, 2004; 2012). 목판인쇄의 특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금속활자의 특징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것은 정성적이며 주관적인 판단을 하는 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고려의 금속활자라고 주장하는 증도가자(證道歌字)로 불리는 금속활자는 목판본임에 이견이 없는 보물 제758-1호(삼성본, 三省本)와 글자체가 비슷하다는 것을 근거로 증도가 금속활자본을 인쇄하는 데 사용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KBS, 2016; 2017; Kyunghyang Shinmun, 2020). 그러나 금속활자본이라고 주장하는 보물 제758-2호(공인본, 空印本)는 인쇄상태가 좋지 않아 증도가자와 모양에서 크게 차이가 있어 정작 증도가를 인쇄한 금속활자로 추정되는 활자가 현존하고 있음에도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DNEWS, 2020; Dabosung Gallary, 2021). 이것은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의 특징이 서지의 관찰을 통해서 얻은 단편적인 정보를 기준으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정보만으로 판단하게 되면 누구나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본 연구에서 제시한 목판본의 인출실험과 같은 실험적 검증을 통해서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에서 나타날 수 있는 특징을 정리함과 동시에 인출 시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와 그 영향을 정량화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게 얻는 정량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판단하게 되면 모두가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 분석을 이용하면 인출 당시의 목판의 마모, 변형, 훼손정도 등의 목판의 상태에 관한 정보를 활용하게 되면 홍길동전을 비롯한 현존하는 각종 목판본 고소설 중에서 간기가 없는 것들 간의 인출시기의 전후관계를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최근에는 강원대 국어국문학과 유춘동 교수가 19세기 중반 전주서 간행한 『홍길동전』 원간본을 최초 발굴했다는 보도가 있었다(Yonhapnews, 2021). 인천과 강릉에 거주하는 개인들이 완판 『홍길동전』원간본 36장본과 35장본을 각각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지난해 확인했다고 한다. 인쇄된 고문헌의 이미지를 조사하고 비교하면 간기가 없는 문헌이라도 인쇄시기의 전후관계를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4. 결론 및 전망
고문헌의 조사에서 인쇄 시기, 인쇄 방법의 판정은 문화재가 가진 의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목판 인쇄된 것인지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인지의 판별 결과에 따라 인쇄 기술사가 크게 바뀔 수도 있다. 목판본과 금속활자본의 판정에는 다양한 정보가 활용되고 있으나 간기를 비롯한 인쇄 배경에 관한 정보가 없는 경우에는 인쇄된 문서의 글자, 광곽, 먹의 종류, 먹의 제작시대, 한지의 제작시기 등의 정보를 분석하여 고문서의 제작시기와 인출방법에 관한 추정을 통해서 종합적인 판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가 연구자 개인의 경험에 머무르고 있어 체계적으로 자료화되어 있지 못한 실정이다. 연구자의 경험과 감각에 의한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불필요한 논란과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본 연구에서는 완판본(完板本) 심청전 복각 목판을 이용하여 목판본의 인출 특성을 실험적으로 조사하고 목판인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변화를 점검하였다. 목판본 인출 시에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과 특징을 자료화하여 고문헌의 인출 방법을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간기가 없는 목판 고소설의 경우에도 목판의 마모 및 손상정도에 따라서 인출시기의 전후관계의 추정에도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복각 목판뿐 아니라 현대 금속 활자를 활용한 인출실험을 통하여 금속활자를 사용한 인쇄방식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고문헌의 조사와 판정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