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분석법을 활용한 형상정보의 비교와 객관적 검증결과의 도출사례: 한국은행 본관 정초석 ‘이토 히로부미 글씨’의 검증
Comparison of Outlines by Image Analysis for Derivation of Objective Validation Results: “Ito Hirobumi’s Characters on the Foundation Stone” of the Main Building of Bank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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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사적 제280호 「서울 한국은행 본관」 정초석의 ‘정초(定礎)’글자가 조선통감부 초대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쓴 글씨라는 보도가 있었다. 서체 관련 전문가 3인으로 자문단을 구성하여 현지조사를 진행한 결과, 정초석에 새겨진 ‘定礎’두 글자는 일본 하마마츠시(浜松市) 시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상의 이토 히로부미의 필적과 운필법 등의 특징으로 그의 글씨임을 확인하였다고 보도되었다. 느낌에 의한 정성적인 판단 보다 객관적인 판단자료를 제공하려면 이미지분석을 통한 글자의 정량적인 비교를 통한 판단의 근거자료의 제시가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이미지분석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이토 히로부미의 붓글씨와 정초석의 글자를 겹쳐 육안에 의한 비교와 글자의 면적을 측정하여 비교하였다. 이미지분석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글자 이미지의 비교분석과 소장자가 기술한 소장경위의 조사를 바탕으로 정초석의 글자가 보도 자료의 내용대로 그의 글씨임을 확인하였다. 글자간의 유사성의 비교에 있어서 이미지분석법을 활용한 정량화를 통하여 객관적인 판단근거를 마련할 수 있음을 예시하였다.
Trans Abstract
There have been reports that the “jeongcho (定礎)” letters of the foundation stone at the historical site No. 280 of the “Main Building of the Bank of Korea in Seoul” were written by Prince Ito Hirobumi (伊藤博文), the first Resident-General of Japan in Korea. An on-site investigation by an advisory group consisting of three experts in calligraphy; revealed that the two characters of ‘定礎’ inscribed on the foundation stone are the characteristics of Ito Hirobumi's handwriting, judging from the writing style and habits observed in the collections of the Central Library of Hamamatsu City, Japan. It was reported that his writing was confirmed by the experts, but no basis was provided. To provide more objective and quantitative supporting data, rather than qualitative judgment based on feeling, it is necessary to present the basis for judgment through quantitative image comparison results through image analysis. In this paper, using image analysis software, Ito Hirobumi's calligraphy writing and the inscribed characters of the foundation stone were compared and analyzed to confirm the contents of the press release. The character comparison process and character area measurement results are a good example showing that if objective judgment basis data are needed in a similar situation, an objective judgment basis can be prepared through quantification using image analysis.
1. 서 론
최근에 사적 제280호 「서울 한국은행 본관」 정초석의 ‘정초(定礎)’글씨가 조선통감부(朝鮮統監府) 초대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쓴 글씨로 확인되었다고 보도되었다(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20). “일본 하마마츠시 시립중앙도서관 누리집”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의 붓글씨와 1918년 조선은행이 간행한 영문잡지 “Economic Outlines of Chosen and Manchuria”에 게재된 이등박문 이름이 새겨진 당시의 정초석 사진 등 관련 자료를 참고하여 서체관련 전문가 3인이 현지조사를 하여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관련 자료사진과 함께“조사 결과 정초석에 새겨진 ‘定礎’ 두 글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묵적(먹으로 쓴 글씨)과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려쓴 획 등을 종합해 볼 때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그의 글씨임을 확인하였다.”라는 부연설명이 있었으나 서체관련 전문가에 의한 주관적인 판단으로 보다 객관성이 있는 판단 근거자료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의 슬픈 역사이기에 바로잡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당사국간에 오해가 생기거나 후대에 다시 논란이 되는 일이 없도록 보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판단 근거자료를 준비하고 기록으로 남겨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서체의 비교뿐만 아니라 다른 역사적 정황에 관한 자료도 보완된다면 차후에라도 불필요한 논란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판단근거를 얻기 위해서는 정량분석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문화유산의 이미지 분석기법을 활용한 연구의 필요성과 활용사례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Charvillat et al., 2009, Kim et al., 2019, Yoo and Yoo, 2020, Ryu et al., 2020). 글자 와 도형의 유사성을 정량화하기 위해서는 이미지 분석기법의 활용이 필수적이다.
본고에서는 보도자료에서 제공된 두 장의 사진 중 액자의 글자를 이미지 분석기법을 통하여 윤곽을 추출하여 정초석에 음각(陰刻)된 글자위에 덧씌워 유사도(類似度)를 가시화하는 과정과 결과를 소개하였다. 서체비교 시에 정량적이면서도 객관적인 판단자료가 될 수 있도록 이미지 분석을 실시하였다. 또한 한국은행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한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1880년 2월 8일 – 1963년 12월 21일)(Wikipedia, 2020))에 관한 자료를 추가로 수집하여 이토 히로부미의 정초석이 설치되게된 배경에 관하여 조사하여 정리하였다.
2. 연구방법
문화재청의 보도자료에서 제공된 정초석에 관련된 두장의 사진(Figure 1(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20))을 이미지 분석법을 활용하여 글자의 윤곽을 추출하여 비교대상의 사진에 덧씌우는 방법으로 글자의 유사도를 비교하였다. 한국은행 본관 정초석 사진의 글자와 액자의 글자의 모양은 상당히 유사하나 사진 촬영 시의 구도와 해상도의 영향으로 글자의 크기가 다르다. Figure 1A의 정초석은 정면에서 촬영된 것이 아니고 약간 왼쪽 아래에서 윗쪽방향으로 촬영되어 이미지 비교 시에 약간의 보정이 필요해 보인다. Figure 1B의 액자의 사진은 비교적 정면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나 오른쪽 윗부분과 왼쪽 아랫 부분에 다른 그림이 함께 실려있던 것의 일부만 발췌한 것으로 보인다. 발췌된 그림만으로는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없으나 액자와 함께 실려있는 것으로 보아 액자의 정초(定礎)라는 글자와 상당한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췌 전의 원본 이미지를 찾아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지분석에는 PicMan(미국 WaferMasters사)을 사용하였다. PicMan은 이미지상의 길이, 각도, 면적, 색상의 측정과 분석을 비롯하여 윤곽추출, 이미지 비교 등의 작업이 용이하게 설계된 이미지 분석 프로그램으로 공학, 자연과학, 농학, 의학분야을 비롯하여 문화재분야 및 인문과학분야에서의 활용도 보고되고 있다(Yoo et al., 2017, Yoo et al., 2019, Kim et al., 2019, Yoo and Yoo, 2020, Ryu et al., 2020, Yoo et al., 2020a, Yoo et al., 2020b). 본 연구에서는 보도자료로 제공된 사진상의 문자의 윤곽을 추출하고 글자 모양의 유사도를 가시화하는 방법을 활용하였다. 광화문 해치상의 원위치 추정작업에 활용했던 방법과 동일한 방법을 적용하였다(Nam et al., 2020a, Nam et al., 2020b). 비교대상의 두 장의 이미지를 이미지 분석 프로그램상에서 겹친 다음, 비교대상의 크기와 위치를 조정하여 비교 분석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Figure 2에 이미지분석 소프트웨어로 이토 히로부미가 붓글씨로 쓴 정초라는 글자, 날짜 및 서명부분을 밝기 및 색상의 임계치를 설정하여 흑백 이미지로 변환하고 윤곽을 추출하여 빨간 선으로 표시한 예를 제시하였다. 액자의 사진에서는 정초(定礎)라는 글자 이외에 메이지 42년 7월 11일, 공작 이토 히로부미(明治四十二年七月十一日、公爵伊藤博文)라는 글자가 확인된다
3. 이미지 분석결과
액자의 글자 윤곽을 이미지 분석을 통해서 추출하는 과정과 결과는 Figure 3과 Figure 4에 정리하여 표시하였다. Figure 3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미지 A상의 모든 화소의 밝기와 색상을 설정된 임계치로 흑백 이미지로 전환하여 이미지 B를 만든다. 이미지 B에서 흑백의 경계선을 따라서 글자의 윤곽을 자동추출하여 빨간색으로 외곽선을 그려 이미지 C를 만든다. 바탕 이미지를 흑백으로 전환하기 전의 이미지로 원상복구하여 이미지 D를 만들어 글자의 윤곽선이 정확하게 추출되었는지 확인한다. 글자의 윤곽선만 남기고 배경을 투명하게 하여 다른 이미지에 겹쳐서 비교할 수 있는 이미지 E를 만든다. 이미지 E를 비교하고자하는 이미지 위에 덧씌워서 위치를 조정하여 가장 잘 맞는 곳에서 글자체의 일치도(또는 유사도)를 비교하기 쉽게하여 이미지 F를 생성한다.
Figure 3F의 글자부분을 확대해보면 Figure 4A와 같이 표시되는데 정초석의 사진이 정면에서 촬영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액자의 수평과 수직방향의 비율과 약간 차이가 발생한다. 글자의 수평방향의 폭을 기준으로 수직방향의 크기를 조정하게 되면 수직방향으로 약 6.2%정도 축소했을 때(Figure 4B) 액자의 글자와 정초석의 글자의 일치도가 크게 나타났다. 단순히 수직방향의 크기를 조정하는 것보다는 정초석의 사진을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을 사용하게 되면 수평과 수직방향의 비율을 조정하지 않아도 일치도가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보도자료(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20)에서 제공 된 정면에서 촬영된 저해 상도의 사진(Figure 4C(1918년 조선은행이 간행한 영문잡지 “Economic Outlines of Chosen and Manchuria”에 소개된 정초석의 사진))을 확대하여 액자의 글자와 비교한 결과 이미지의 수평 또는 수직방향의 배율을 조절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치도가 상당히 높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다만 원본에 종이를 대고 글자모양의 본을 만들어 석재에 종이본을 붙이는 과정에서 액자의 글자간의 간격과 한자(漢字) 글자내의 변(邊)과 방(傍), 머리와 발의 간격이 약간 다르게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메이지 42년 7월 11일, 공작 이토 히로부미(明治四十二年七月十一日、公爵伊藤博文)라는 글자는 액자 상의 위치보다 아래쪽으로 이동하여 새긴 것으로 확인된다. 정초석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액자의 글자의 위치대로 새길경우, 정초가 중심선보다 아랫쪽에 새겨져야 하기 때문에 종이본을 붙일 때 위치를 조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의 文자의 일부가 액자상에서도 거의 보이지 않으나 Figure 4C의 사진상으로는 정초석에는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액자와 정초석의 사진 상의 정초 글자의 크기를 동일하게 조정하여 각각의 글자의 면적을 측정한 결과 액자 사진 상의 정(定)자의 면적은 11,727화소이고 초(礎)자의 면적은 16,670화소로 측정되었다. 정초석 사진 상의 정(定)자의 면적은 10,938화소이고 초(礎)자의 면적은 13,927화소로 측정되었다. 액자상의 글자가 정초석의 글자보다 면적이 크게 측정되었다. 정(定)자는 7%, 초(礎)자는 16% 작은 결과이다. 정초석이 음각(陰刻)으로 새겨진 것과 윤곽추출 시의 오차를 고려하면 정초석 상의 글자의 면적이 작게 나오는 것은 타당성이 있어보인다. 정(定)자 보다 획수가 많은 초(礎)자의 면적에서 차이가 크게 나는 것도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액자의 글자가 원본이었다고 하면 정초석을 새길 때에 사용한 것은 글자본일 수 밖에 없다. 붓글씨의 특성 상 같은 사람이 글을 쓰더라고 완벽하게 동일한 크기와 모양의 글자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적 분석에서도 100% 완벽한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과학적 분석으로도 부족한 부분은 당시의 정황에 관한 자료를 찾아서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액자의 글자의 유래와 소장자가 소장하게 된 경위를 조금더 조사하여 결론을 짓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4. 고찰 및 결론
문화재청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서울 한국은행 본관은 1907년에 착공, 1909년 정초 후 1912년 조선은행 본점으로 준공된 건축물로, 일제는 이를 통해 우리나라 경제 침탈을 자행하였으며, 광복 후 1950년 한국은행 본관이 되었고, 1987년 신관이 건립되면서 현재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20).
사실관계를 조금 더 자세히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액자의 소장자는 한국은행 건물을 시공한 건축가 나카무라요시헤이(中村與資平(1880년 2월 8일 – 1963년 12월 21일)(Wikipedia, 2020)로 액자의 사진은 Hamamatsu City Central Library, 2020a에 소개된 메이지 45년(1912년) 에 창업한 나까무라 공무소(中村工務所)의 영업경력이라는 책자에 나까무라 요시헤이의 사진과 함께 실려있다(Figure 5). 문화재청의 보도자료에 사용된 액자의 사진은 Figure 5C의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오른쪽 상단과 왼쪽 하단의 그림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의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적혀있다. 100여년전의 일본어로 적혀있으며 현대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明治四十二年七月十一日朝鮮銀行本店新築工事の定礎式擧行の節、伊藤博文公執られたる銀鏝(메이지 42년(1909년) 7월 11 일 조선은행 본점 신축공사의 기공식 을 거행할 때, 이토 히로부미 공이 잡으신 은으로 만든 흙손)
同行柱石に執筆されたる定礎なる文字の原本を私のために特に賜はりたるもの(동은행 돌기둥에 집필하신 정초(定礎)라는 문자의 원본을(은) 나를 위해 특별히 하사하신 것)
工事落成により同行より送られたる金盃(공사가 낙성됨에 따라 동은행으로부터 보내온 금잔)
이와 같이 이토 히로부미가 쓴 정초라는 붓글씨가 본인에게 전해진 경위에 대해서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한 1909년 7월 11일 조선은행 본점 신축공사의 기공식에 이토 히로부미가 직접 참석하여 은(銀)으로 만든 흙손을 사용했다는 내용과 공사가 끝나고 조선은행에서 금잔을 보내왔다는 내용도 적혀있다. 따라서 액자의 글씨가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사실과 소장품이 원본임을 알 수 있다.
또한, Hamamatsu City Central Library, 2020b와 Wikipedia, 2020에 의하면 나까무라 요시헤이는 1905년 동경제국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은사였던 타츠노 긴고(辰野金吾)가 카사이 만지(葛西萬司)와 운영하던 타츠노카사이사무소(辰野葛西事務所)에서 건축설계일을 시작했으며 타츠노카사이사무소에서 제일은행 한국총지점(第一銀行 韓國總支店)(공사도중에 조선은행본점(朝鮮銀行本店)으로 개칭)의 설계의 실무를 담당하고 1907년에 공사감리를 위해서 경성(京城, 서울)을 방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공사의 성공으로 1912년에 경성에서 나까무라건축사무소를 개설하였으며 이것이 한국에서 최초의 민간 건축사무소였다고 한다. 1920년에는 중국 대련(大連)에 조선은행 대련(大連)지점과 중국 심양(瀋陽)에 조선은행 봉천(奉天)지점을 준공하고 1921년에는 서울에서 천도교중앙대교당(天道教中央大教堂)을 준공하였다. 1926년에는 李王家大磯御別邸를 1937년에는 李王家美術館(德壽宮美術館) 을 준공하였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활동기록이 나까무라 요시헤이의 기록의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Hamamatsu City Central Library, 2020c의 나까무라 요시헤이의 자서전에 이토 히로부미의 친필 휘호(揮毫)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주목할만한 기록이 있다.
“이후, 큰 일없이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1층 바닥의 콘크리트도 타설이 끝났기 때문에, 1909년 7 월 당시의 통감 이토 히로부미 공이 현장에 오셔서 정초식 (기공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이토공(公)이 은(銀)에 금색무늬가 있는 흙손(鏝)으로 초석 (은행 동남쪽 모서리에 주춧돌)을 설치하셨다. 그 주춧돌에 나중에 조각한 정초(定礎)의 2 자는 공이 휘호를 쓰신 것으로, 집에 보존하고 있는 정초의 액자는 그 원본이다. 공은 그 해 9 월에 러일(露日) 교섭을 위하여 만주를 방문하시어, 조선인 안중근(安重根)에게 하얼빈역에서 권총으로 사살되셨기 때문에, 이것이 공으로서는 마지막 휘호일지도 모른다.”
라고 적고 있다.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를 얼마나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는 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정초석에는 ‘定礎’ 두 글자와 ‘明治四十二年七月十一日、公爵伊藤博文’라는 글자의 높이를 조정하여 새겨졌었던 것은 Figure 4C를 통해서도 유추가 가능하다. 액자의 ‘定礎’ 왼쪽에 쓰여진 나머지 글자인의 윤곽이 정초석의 높이와 맞지 않는 것으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현재는 정초석에 정초라는 글자만 선명하게 남아있고 나머지 글자는 희미하게 남아있어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어떤 글자가 남아 있는 지, 그 글자는 누구의 필치인지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문화재청의 보도자료(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20)에 따르면
“특이사항으로는 정초석에서 정초 일자와 이등박문 이름을 지우고 새로 새긴 “융희(隆熙) 3년 7월 11일”(1909.7.11) 글씨가 이승만 대통령의 필치로 보인다고 의견이 제시되었으나 정확한 기록은 없는 상태이며, 아마도 해방 이후 일본 잔재를 없애고 민족적 정기를 나타내기 위해 이승만이 특별히 써서 석공이 새긴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정초석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지분석을 통해서 액자의 글씨와 조각된 글자를 비교해 본 결과와 액자 소장자의 액자 소장경위에 대한 상세한 기록등으로 볼 때 한국은행 본관 정초석의 ‘定礎’ 두 글자는 조선통감부 초대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필적임은 분명해 보인다.
앞으로 정초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겠지만 액자의 소장자가 의미를 부여했듯이 안중근의사에 의해서 살해되기 직전에 쓴 것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마지막 휘호일 가능성이 높고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철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지만 철거한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끄러운 역사를 제대로 알려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지분석을 통해서 필체를 정량적으로 비교하여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액자와 정초석 상의 글자의 면적을 측정하여 정량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글자의 특징을 정량화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면적의 비교가 아닌 도형의 유사도의 정량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도형의 유사도의 정량화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면적, 윤곽선의 길이, 면적과 윤곽선의 길이의 비율, 글자의 위치, 글자간의 간격 등의 정보를 정량화하여 활용하면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구체적인 유사도의 정량화 사례는 추후에 별도의 논문으로 정리하여 발표할 예정이다.
이러한 이미지분석기술을 활용하면 그동안 문제가 되어왔던 증도가(證道歌)가 목판본인가 금속활자본 인가하는 문제(The Kyunghyang Shinmun, 2020)와 증도가자(證道歌字)로 추정되는 금속활자의 진위문제(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2017)를 판가름하는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지분석을 통한 목판인쇄와 금속인쇄의 특징 파악과 인쇄상태로부터 인출시기의 전후관계도 특정할 수 있도록 문화재관련정보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정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주관적인 판단보다는 이미지 분석을 통한 많은 양의 정보를 수집하여 보다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도록 과학적인 분석방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활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