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벽화 제작기법의 역사는 작품의 기원과 역사적 발전을 담은 주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며, 미술사연구에 공헌한다. 또한 벽화의 올바른 보존을 위해서는 제작기술에 대한 정 확한 지식이 필요하며, 이는 보존처리 전 반드시 연구되어 야 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따라서 벽화 제작에 사용된 재료 와 기법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이를 기반으로 신뢰 성 있는 벽화보존 연구가 가능할 것이며,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보존방안들이 제시될 것이다(
Lee, 2013).
그간 국내에 있어서 1980년대 초반까지는 사찰벽화에 보존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로서 벽화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전무하였으며, 특히 사찰벽화 제작기술에 관한 연구는 비교적 늦게 시작된 편에 속한다. 2006년 강진 무위사 극락전 내벽 사면벽화의 전통재료와 제작기술에 대 한 과학적 입증을 첫 연구사례로 하여(
Chae et al., 2006), 2008년에는 안동 봉정사 영산회상 벽화 벽체의 재료적 특 성에 따른 제작기술 연구가 이루어졌다(
Jeong and Han, 2008). 이후 여수 흥국사 대웅전 후불벽 배면벽화, 김제 금 산사 미륵전 외벽화, 고창 선운사 대웅전 후불벽화 등 사찰 벽화 제작특성을 비교하는 연구결과들이 제시되었다(
Lee, 2016).
우리나라 사찰벽화는 목조건물의 흙벽에 그려진 것으로 서, 목가구재에 나뭇가지를 골격으로 하고 토양을 주재료 로 벽체를 조성 후 천연 안료와 전색제를 혼합하여 채색층 을 제작하였다. 재료 대부분이 자연에서 얻어지는 연질 소 재로 구성된 사찰벽화는 주변 환경과 재료적 한계성으로 인해 보존에 있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된다. 이러한 요 인들로 인해 한국 사찰벽화는 다른 문화재들에 비해 그 수 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며, 벽화의 보존을 위한 다각적 분야의 연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Lee, 2013).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은 현재 보물 제2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보전 내·외부 벽면에 후불벽 배면벽화를 포함 하여 포벽화 및 판벽화 등 총 111점의 벽화가 남아있다. 그 중 포벽화는 동·서 측면에 각 7점, 남·북 측면에 각 10점으 로 내·외부벽화 34점씩 총 68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 후불벽 배면벽화는 2010년 보존처리 과정에서 이루어진 과학적 조사를 통해 벽화 제작기법이 확인되었으나, 포벽화에 대한 과학적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재 내소사 대웅보전 포벽화의 경우 벽체의 파손 및 채색층 열화 등 종합적 손상이 발생된 것으로 조사되어 이에 대한 보존처리가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안 정적인 보존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벽화를 구성하는 구 조 및 재료에 따른 제작상태를 파악하는 연구가 우선적으 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내소사 대웅보전 포벽화를 구성하 는 벽체 및 채색층에 대한 면밀한 분석 조사를 실시하여 벽 화 제작기법 특징을 파악하였으며, 이를 통해 학술적 주요 정보를 마련하고 향후 보존처리를 위한 효과적인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고찰 및 결론
내소사 대웅보전 포벽화 벽체 구조 조사결과, 나뭇가지 를 엮고 흙 반죽을 사용하여 두 차례에 걸친 미장을 통해 흙벽을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조는 외가지 를 골조로 하여 흙으로 초벽층, 중벽층 그리고 마감층을 구 성하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사찰벽화 제작양식을 따르고 있 으나(
Lee, 2013), 층위별로 사용된 재료나 기술의 흔적으로 미루어 볼 때 일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는 특징을 보인다.
먼저, 안동 봉정사 영산회상 벽화와 강진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에 대한 벽체 구조 조사결과(
Chae et al., 2006; Jeong and Han, 2008)와 여수 흥국사 대웅전 후불벽 배면 벽화 및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후불벽 배면벽화, 부안 내소 사 대웅보전 후불벽 배면벽화, 고창 선운사 대웅전 후불벽 화 그리고 김제 금산사 미륵전 외벽화에 대한 벽체 구조 조 사결과(
Lee, 2016) 등 조선시대 전반적인 시기에 걸쳐 제작 된 사찰벽화 구조에서는 초벽층, 중벽층, 마감층으로 벽체 층위가 구성되는 특징을 보인다. 그러나 내소사 대웅보전 포벽화에서는 초벽 개념으로 제작된 벽체층 위로 중벽층 없이 다소 두꺼운 두께의 마감층이 제작되어 있다.
다음으로, 대부분의 사찰벽화는 초벽과 중벽에 짚여물 이 혼입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내소사 대웅보전 포벽화 벽 체에서는 짚여물로 추정되는 물질이 극히 드물게 확인되므 로 의도적인 혼합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또한 포벽화 벽체 층에 혼합된 목질 수종분석 결과에 따라 소나무류의 목질 을 혼합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기존 조선시대 사찰벽화 벽 체층에 일반적으로 짚여물이 사용된 경향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이 확인되었다.
마지막으로 마감층 특징으로서, 내소사 대웅보전 포벽 화의 마감층 두께가 크게는 23 mm로 두꺼우며, 사용된 모 래의 크기가 크고 함량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강진 무위 사 극락전 내벽 사면벽화의 경우 마감층의 두께가 7~10 mm(
Chae et al., 2006), 안동 봉정사 영산회상 벽화 마감층 은 5~6 mm(
Jeong and Han, 2008), 여수 흥국사 대웅전 후 불벽 배면벽화 마감층은 5~8 mm,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후불벽 배면벽화 5 mm 내외,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후불벽 배면벽화 5 mm 내외, 고창 선운사 대웅전 후불벽화 5 mm 내외, 김제 금산사 미륵전 외벽화 5 mm 이내 등(
Lee, 2016) 모두 10 mm를 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특징들을 통해 내소사 대웅보전 포벽화 벽체 의 층위는 다른 사찰벽화의 구조와 비교할 때 벽체 층위가 간소화되어 있으며, 굵은 입자크기 모래의 함량과 짚여물 의 부재 그리고 벽체층 표면 마감상태 등을 미루어 벽체 제 작과정이 비교적 단조로웠던 것으로 판단된다. 마감층이 두꺼울 경우 하중을 증가시켜 벽체 및 마감층간의 분리로 인한 손상을 가중시킬 수 있으며, 짚여물과 같이 벽체에 사 용되는 섬유보강제는 벽체의 수축으로 인한 균열과 분산작 용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므로(
Han, 2003), 이와 같은 재료 의 부재는 벽체의 물리적 손상이 발생될 경우 취약한 요소 로 작용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사찰벽화 마감층에 사용된 섬유질의 경우 마섬유가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Lee et al., 2015), 내소사 대웅보전 포벽화 마감층에는 갈대가 동정되었다. 갈대의 경우 섬유질로 가공하여 토벽체에 혼합하여 사용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갈대를 이용한 펄프는 수 세기 동 안 사용되었으며(
Ilvessalo-Pfaffli, 1995), 한국에서도 갈대를 사용한 저급 종이가 사용되었으므로, 갈대 섬유로 제작된 종이를 해리시켜 마감층 반죽에 혼합하였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포벽화의 각 층위를 구성하는 입자에 대한 미세조직 및 화학성분 분석 결과, 다양한 크기의 토양입자 또는 판상의 결정상 응집체와 규소(Si)와 알루미나(Al) 등 일반적인 토 양 물질에서 확인되는 화학성분이 검출되었다. 또한 석영 과 장석류 계통의 광물 결정상이 동정되는 등 벽체층 및 마 감층을 구성하는 주재료는 암석에서 기인하는 풍화토와 모 래 등이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기존 연구된 사찰벽 화 벽체 재질특성 분석결과(
Lee, 2016)와 유사한 범위에 속 한다.
입도분석 결과, 육안상 조사된 내용과 같이 벽체층은 황 토의 함량이 높은 반면, 마감층은 모래의 함량이 상당히 높 은 것으로 나타났다. 벽체층은 중립사 이상이 8%, 세립사 이하가 92%로 모래와 세립사 이하 크기의 토양을 약 0.8:9.2로 비교적 균일하고 미세한 크기의 토양을 혼합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감층은 내부의 경우 중립사 이 상이 약 60%, 세립사 이하가 약 40%로, 세립사 이하 크기 의 토양보다 모래의 함량이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외부 마 감층 또한 중립사 이상과 세립사 이하의 비율은 내부 마감 층과 동일하게 나타났다. 벽체층과 마감층을 비교해보았을 때, 벽체층은 세립사 이하 입자가 많고 마감층은 중립사 이 상 입자의 함량이 높은 특징을 보인다. 이는 벽체층과 마감 층의 밀도 차이를 나타내며, 이러한 조건은 토벽체에 흡습 및 방습이 반복될 경우 벽체 층간 체적비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응력 차이를 발생시켜 층간 균열 및 분 리 등의 물리적인 손상을 야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Lee et al., 2018).
디지털현미경을 통한 시료 분석에서는 바탕칠층 녹색을 포함하여 녹색, 적갈색, 황갈색 계통과 백색 등 다섯 종류 의 색상이 확인되었으며, 시료 모두에서 바탕칠층이 관찰 되었다. 녹색 바탕칠층의 경우 규소(Si)와 알루미나(Al)가 주성분으로 검출되어 뇌록 또는 녹토(celadonite or glauconite) 안료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녹색 채색층에서는 구리 (Cu), 염소(Cl)가 주 원소로 관찰되어 녹염동광(atacamite) 이, 백색에서는 알루미나(Al)와 실리카(Si)가 주성분으로 나타나 백토(kaolinite or halloysite) 안료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적갈색과 황갈색은 철(Fe)이 주성분으로 검출되어 산화철계 안료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나 이 부분에 대해 서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전처리를 거친 시료 단면을 통해 채색층위 구성 및 두께 특징을 살펴본 결과, 앞선 시료 현황 조사 결과와 동일하게 녹색 계통의 바탕칠층 위에 녹색, 적갈색, 황갈색, 백색 등 이 채색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층위별 두께 특징에서는 바탕칠층이 다른 채색층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두께 차이 가 큰 것이 확인되었다. 특히 P-2 시료의 경우, 같은 녹색계 통이지만 바탕칠층과 채색에 사용된 각각의 녹색층 두께가 상이하며, 바탕칠층의 녹색이 확연히 두껍고 편차가 크다. 또한 P-3 시료에서 채색층의 색상별 두께 차이가 최대 녹색 148.41 μm, 황갈색 93.01 μm, 적갈색 70.36 μm의 순으로 확인되어, 상대적으로 바탕칠층을 두껍게 조성 후 그 위로 채색이 얇게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마감층을 매 끄럽게 하도록 바탕칠층을 다소 두껍게 칠한 결과로 해석 할 수 있다. 입자가 큰 모래가 다량 사용된 마감층은 표면 이 상대적으로 거칠기 때문에 안정적인 채색층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벽화면을 매끄럽게 조성된 바탕칠층이 필수적이 다. 벽체 성분 및 입도분석 결과, 그리고 단면 조사 이미지 에서 제시되는 마감층 표면의 요철과 그 위로 조성된 바탕 칠층의 불규칙한 두께가 이를 방증한다.
지금까지 분석 조사된 벽체 구조, 벽체 구성재질, 채색 층위 특징 등 종합적 연구결과를 통해 내소사 대웅보전 포 벽화의 제작기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내소사 대웅보전 포벽화는 외가지를 골조로, 황토, 모래 와 잘게 자른 소나무류의 목질을 혼합하여 벽체를 조성 하 였으며, 그 위로 모래 함량이 높은 황토 반죽에 미세한 갈 대 섬유를 혼합하여 마감층을 제작하였다. 채색층은 뇌록 을 사용한 바탕칠로 매끄러운 벽화 표면을 마련 후 녹염동 광, 백토, 산화철 계통 안료 등을 사용하여 1~3회 덧바르며 도상을 채색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시료 단면에 대한 채 색층위별 정밀분석을 통해 사찰벽화에 널리 사용된 바탕칠 층의 기능적 역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토벽체 제작양식과 채색기법은 현재까지 연 구된 조선시대 사찰벽화의 제작양식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 로 사료된다. 그러나 마감층에 사용된 모래 함량이 높은 점 은 직지사 대웅전 포벽화 마감층 및 금산사 미륵전 외벽화 마감층의 입도분포도와 유사한 경우로서(
Lee, 2016; Lee et al., 2018), 조선시대 전기에 해당되는 사찰벽화 마감층의 입도분포도와는 다른 특징을 갖는다. 또한 벽체 구조에서 중벽이 확인되지 않으며, 벽체층 제작에 짚여물을 사용하 지 않고 목질을 혼합한 점 등은 내소사 대웅전 포벽화의 벽 체가 지닌 구조 및 재료적 특이점으로 볼 수 있다.
금번 내소사 대웅보전 포벽화가 갖는 토벽체 및 채색층 제작기법 특징에 대한 연구결과가 향후 벽화 보존상태 평 가 또는 보존처리 방안 마련에 주요 정보로 활용될 수 있기 를 기대한다.